돈의 인문학 강좌 지상중계
"수박이 한 통에 1만원이다. 그 옆에 진열대에서는 반 통을 7000원에 팔고 있다. 당신은 어떤 걸 고르겠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흔히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반 통을 사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라 이왕이면 한 통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고,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 어차피 다 먹지 않을 거라면 반 통을 사는 게 더 경제적이라고 답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의 답변은 허를 찌른다. "당신은 애초에 수박을 살 생각이 없었다!"
비슷한 다른 질문도 있다. 옷을 사려는데 옆에서 친구가 말린다. 2만원짜리 셔츠다. "버스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똑같은 옷을 1만원에 살 수 있어." 아마도 당신은 친구가 말한 그 가게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번에는 100만원짜리 TV를 생각해 보자. "버스 한 정거장만 더 가면 똑같은 TV를 99만원에 살 수 있어." 당신은 과연 고작 1만원을 깎자고 버스를 타고 그 가게로 갈까. 같은 1만원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제 대표는 똑똑한 사람들이 이처럼 멍청한 결정을 내리는 이유를 '손해 본다는 감정'에서 찾는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는 감정 때문에 손해를 피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린다. 수박을 사러 온 게 아닌데 반 통에 7000원짜리 수박을 보는 순간 1만원짜리 수박을 사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먹고 싶지도 않았던 수박을 사들고 온다.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 순간 불필요한 소비가 늘어난다.
흔히 돈이 돈을 번다고 말하는데, 사실 돈이 돈을 버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누군가의 돈이 누군가의 돈을 벌어주는 것 뿐이다. 머니 게임이다. 누군가가 돈을 벌면 누군가는 잃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게 내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운 좋게 돈을 벌면 빠져나와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사람들이 빠져나오는 때는 더 잃게 될까 두려울 때다. 그때는 이미 투자 원금이 반 토막 이하로 줄어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듀머니에 상담하러 온 한 신혼부부는 4억원에 산 아파트가 7억원으로 올랐다. 아파트를 팔 거냐고 물었더니 미쳤어요? 라는 반응이 나왔다. 12억원까지 갈 거라는데 지금 팔면 손해 아니냐는 이야기다. 단순히 자산 가치가 올랐을 뿐인데 실제로 돈을 번 것처럼 착각하는 실수를 많은 사람들이 저지른다. 더 큰 실수는 늘어난 자산 가치에 맞춰 소비를 늘리는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3억원을 벌었는데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건 찌질해 보이기도 한다.
만약 이 부부가 당장 아파트를 팔면 3억원의 현금을 쥐게 되겠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당장 어딘가 다른 집을 구해야 되는데 다른 집들도 다 올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흔히 도박으로 번 돈을 도박으로 다 날리는 것처럼 주식으로 번 돈은 다시 주식에 쏟아붓기 마련이고 부동산에 들어간 돈을 다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인생에 다시 이런 기회는 없다고 생각하고 딱 자르고 털고 나오기가 쉽지 않다.
제 대표는 정말 운이 좋게 부동산으로 얼마라도 돈을 벌었다면 지금이라도 이익을 실현하고 빠져나오라고 조언한다. 지금은 시세차익을 노릴 때가 아니라 자산가격 폭락을 걱정해야 할 때다. 평생 살 집이라 상관없다? 부채를 끼고 샀다면 상환 능력을 심각하게 점검해야 할 때다. 손해를 보고 있다면 손해 규모를 어느 수준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이익에 민감하지만 손실에는 둔감하거나 애써 무시하려 한다.
상담을 받으러 온 다른 어떤 사람은 빌라를 하나 샀는데 3000만원 정도 올랐다. 그래서 빌라를 두 채 더 샀다. 지금은 본가로 들어가고 세 채를 모두 임대를 놓고 있는데 이자만 월 250만원을 낸다. 경기가 좋을 때는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지 못해 안달을 한다. 그런데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담보 능력이 부족하다며 일부라도 상환을 하라고 압박을 한다. 당장 5000만원을 갚으라고 하는데 이미 풀로 대출을 받은 상태에서 그런 돈이 어디에 있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는 금융 불안정 가설에서 세계적으로 금융 시장이 과도하게 팽창하면서 작은 충격에도 시스템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빚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이 채무 상환을 위해 건전한 자산까지 한꺼번에 내던지면 금융위기가 시작되는데 그 시점을 민스키 모멘트라고 부른다. 지금은 집을 팔고 싶어도 못 팔지만 그래도 팔아야 하는 어느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제 대표가 상담했던 최악의 한 사례는 이미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처음 은행에서 상환 압박을 받았던 6개월 전에 바로 찾아왔으면 좀 더 나은 대책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능한 일부라도 갚고 은행에 상환 규모를 줄여달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감당할 수 없다면 집을 처분하는 게 최선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부동산을 담보로 여기저기 새마을금고와 대부업체에서 돈을 끌어다 막기 바빴다. 대출 건이 12건이나 됐다.
결국 이 사람은 나중에 빚을 모두 처분하고 나니 월세를 얻을 보증금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자기가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4억원짜리 집을 자기 자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값이 오르면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더 빌릴 수 있으니까 집만 갖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을 팔아야 빚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집을 지키려 빚을 더 늘려왔고 결국 집까지 날리게 된 상황이다.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수동 유브레인 교육장에서 열린 '돈의 인문학' 공개 강좌에서 제 대표는 대선 패배의 상실감에서 벗어나려고 일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연을 시작하고 불법 채권추심 사례 조사도 하고 있다. 어쩌다가 가끔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불법 채권추심은 정말 심각하다. 제 대표는 한동안 대부업 금리 상한을 낮추고 불법 채권추심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입법화 작업에 '올인'한다는 계획이다.
요즘 대부업체에서 추심하는 채권의 절반 정도가 금융권에서 넘어온 채권이라는 사실도 놀랍다. 부실채권으로 분류된 채권을 신용정보 업체들은 1% 수준에 사들인다. 100만원을 빌려줬는데 받지 못할 상황이 되면 그 채권을 1만원만 받고 팔아넘긴다는 이야기다. 왜 이렇게 헐값에 넘길까. 어차피 못 받을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신용정보 업체들에 은행들이 지분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채권을 고작 1%에 팔아넘길 거라면 먼저 채무자에게 2~3% 정도 갚고 털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봐주면 좋지 않을까. 그 정도는 어떻게든 갚을 여력이 있을 테니까. 그런데 신용정보 업체들은 이렇게 헐값에 사들인 채권을 웃돈을 받고 대부업체에 다시 팔아넘긴다. 채무자들은 이제 대부업체에게 시달리게 된다. 어떤 대부업체는 복도식 아파트인데 대출 연체됐다는 쪽지를 현관 문 앞에 붙여놓기도 했다고 한다.
"10년 전에 은행에서 빌린 돈을 못 갚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대부업체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 일단 몇만원만이라도 입금하라고 공손하게 말하는데 이럴 때 조심해야 한다. 채권 만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100원이라도 갚고 나면 채권 기한이 연장되기 때문이다. 꼭 갚겠다는 말도 조심스럽게 하는 게 좋다. 이런 경우에는 일단 알아보고 연락하겠다고 하고 금융감독원에 문의를 하는 게 우선이다."
"우리나라는 채권 추심 과정에서 심각한 불법행위가 너무 많이 일어난다. 그런데 신고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신고를 해도 거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 금리 상한을 낮추면 풍선 효과 때문에 불법 대부업체가 늘어난다고 하는데 불법 대부업체는 지금도 많다. 문제는 금리 상한이 아니라 단속 의지다. 금리를 강제로 낮추면 대부업체들이 망한다고 하는데 그걸 왜 정부에서 걱정하나. 다 망하게 만들어도 문제 될 것 없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하우스 푸어 대책이라고 내놓은 국민행복기금은 이런 채권을 자산관리공사가 사들여서 일부 감면을 해주고 추심을 하겠다는 건데, 도대체 정부가 왜 이런 일을 하나. 대부업체들이 1%에 사던 걸 정부가 5%에 사주면 금융회사들만 좋은 일이 된다. 결국 추심 업체들에게 다시 외주를 주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차라리 파산과 면책을 활성화하고 빌려주는 쪽(금융회사들)에 책임을 묻는 게 더 근본적인 해법이다."
제 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는 벌써부터 출입문 폐쇄 공포증이 확산되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자산가치가 오를 때 뒤늦게 추격 매수를 해서 몰빵했다가 떨어질 때 공포심에 투매를 한다. 손해를 보기 전까지는 결코 빠져나오지 못한다. 버는 것의 85%가 빚일 때 임계 수준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1200조원, 가계부채는 이미 1100조원을 넘어섰다. 지금은 투매가 시작되기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제 대표는 "열심히 사는 사람은 삶이 나아진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깨지니까 상처를 받고 무력감에 사로 잡힌다"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신용카드를 긁으면서 무작정 소비를 늘리고 그러면서 돈 걱정 증후군에 빠져든다"고 설명했다. 제 대표는 "돈이 돈을 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많든 적든 당신이 버는 월급, 그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고 결국 소비가 핵심"이라는 이야기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의 사례도 흥미롭다. 이 사람은 140만원의 월급 가운데 70만원을 저축한다. 그걸로 어떻게 생활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쓰는 돈은 70만원 이상이다. 과거에 적금 부은 돈의 만기가 계속 돌아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제 대표는 "자산을 쌓으려 저축을 하지 말고 미래의 좀 더 적극적인 소비를 위해 저축을 하라"고 조언한다. "소비의 쾌락에 적응하려 하지 말고 불편에 적응하는 훈련을 해보라"고 조언한다.
신용카드를 긁어 TV를 구입하는 건 쉽지만 제 대표의 가족은 TV를 사기 위해 적금을 들었다. 8개월 뒤 돈이 적당히 모인 뒤 가전제품 매장을 찾았을 때 제 대표의 가족들은 생각만큼 TV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이 가족은 그 돈으로 여행을 떠났다. 제 대표는 "우리가 추구하는 소비의 쾌락은 말 머리에 매단 당근처럼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망치 10개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망치를 못 찾겠어서 마트에서 사오고 보니 그렇게 사들인 망치가 10개나 되더란 이야기다. 많은 소비가 더 많은 즐거움을 주는 건 아니다. 쾌락에 쉽게 적응하고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디드로 효과'라는 것도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가 서재에서 입을 가운을 선물 받고 그 가운에 맞춰 책상까지 바꾸게 됐다는 데서 비롯한 말인데 그만큼 소비의 욕망은 끊임없이 증식되면서도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제 대표가 한 대안학교 특강에서 아이들에게 지금 갖고 있는 학용품을 적어보라고 했더니 연필 50자루, 가위 12개, 지우개 8개 등등의 목록이 나왔다. 그걸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부모님 어린 시절과 비교해 보라는 숙제를 내줬다. 그 시절 몽땅 연필을 깎아 쓰면서 이제 곧 새 연필이 생길 거라는 두근두근거리는 기대와 행복한 감정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없다. 어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풍요가 곧 행복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흔히 언론에서는 100세까지 살려면 밥만 먹고 살아도 60세에 6억원은 있어야 한다고 떠든다. 적당히 노후를 즐기면서 살려면 10억원은 있어야 하고 해외여행도 다니고 하려면 20억원은 마련해둬야 한다고 한다. 제 대표는 "금융회사들의 공포 마케팅에 속지 마라"고 조언한다. 6억원씩 들고 노후를 맞는 사람이 거의 없을 뿐더러 중요한 건 자산이 아니라 현금 흐름이기 때문이다. "달마다 80만원은 있어야 먹고 산다"고 말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다.
60세까지 6억원을 마련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기하게 된다. 그렇지만 지금 물가 수준으로 월 80만원 정도 수입을 만들어야 한다면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주거 문제만 해결된다면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제 대표의 설명이다. 중요한 건 60세 이후에 최소한의 현금흐름을 만들면서도 자신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만드는 것이다.
"결핍에는 두 종류가 있다. 지금도 없는데 나중에도 없을 것 같은 결핍감, 그리고 지금은 없지만 나중에 생길 것 같을 때 오는 결핍감, 충족이 예상되는 결핍은 행복을 늘린다. 여행 가기 전 날 더 행복한 것과 같다. 내가 지금은 충분히 자기 실현적인 직업을 갖지 못한다고 해도 노후에 자기 실현적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면 어떨까. 인생 100세를 위해 준비할 것은 6억원이 아니라 그런 미래 전략이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소득으로 집을 마련하는 건 불가능하다. 자산을 늘리려고(집을 소유하려고) 저축을 한다는 건 사실 동어반복이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도 현재 시점에서는 매우 위험하다. 돈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돈을 불려주는 결과가 되기 쉽다. 제 대표는 "자산을 축적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말한다. 주거와 노후의 걱정이 사라지면 쓰기 위해 저축을 하게 된다.
원론적이지만 "좀 더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정부가 주거와 노후 복지를 싸게 공동구매하고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는 게 제 대표의 결론이다. 현실은 암울하지만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자, 그게 제 대표가 대선 이후 '멘붕'을 이겨낸 비결이다. 제 대표는 "성실하게 살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 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얼치기 금융 전문가들의 거짓 선전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돈이 돈을 번다'는 믿음을 버리면 투기적 욕망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일확천금의 행운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겠지만 그만큼 당신의 삶에 위험요인도 줄어든다. 자산시장의 거품이 꺼져가는 지금은 특히 그런 기대를 버리는 게 좋다. 많지 않은 월급과 그 월급을 쪼개서 모은 저축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 삶의 방식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합리적인 소비를 고민하게 된다.
나의 생각 : 인간은 비합리적 존재. 손해 보고 싶지 않다는 감정 때문에 비이싱적인 선택을 하곤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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